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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풍물시장 주변볼거리(2) 갑곳돈대, 고려궁터, 강화지석묘

#1. 갑곳돈대



▲ 갑곳돈은 고려가 1232년 부터 1270년 까지 도읍을 강화도로 옮겨 몽고와의 전쟁에서 강화해협을 지키던 중요한 요새로, 대포 8문이 배치된 포대이다. 조선 1644년 강화의 요충지마다 군대 주둔지를 설치할 때, 제물질에 소속된 돈대로서 1679년에 완성되었다. 1977년에 옛터에 새로이 옛모습을 되살려 보수, 복원이 이루어졌다. 지금 돈대 안에 전시된 대포는 조선시대 것으로 바다를 통해 침입하는 왜적의 선박을 포격하던 것이다.

- 자료출처- 관광안내소에서 제공하는 팜플랫


▲ 홍이포와 블랑기
홍이포는 조선후기에 우리나라 군대에서 사용하던 대포중의 하나이다. 유럽사람들이 사용했던 화포라고 하여 "붉은 오랑캐의 화포" 즉 "홍이포"라 하였다. 우리나라는 명나라를 통해 전해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포의 길이는 대개 250cm 정도, 구멍의 지름은 대개 10cm 정도, 무게는 3톤이다. 홍이포는 700m 거리에 있는 목표물을 맞출 수 있는 성능을 가지고 있다.




▲ 비석군
조선시대 선정을 베푼 유수, 판관, 경력, 군수의 영세불망비 및 선정비와 자연보호의 일환으로 세운 금표, 삼충신을 기리는 삼충사적비 등총67기 비석이 모여있다. 조상들의 자연보호 정신을 엿볼 수 있는 표석인 금표는 1703년 (숙종 29년)강화유수부(고려궁지) 앞 등지에 세웠던 것으로 "가축을 놓아 기르는 자는 곤장 100대, 재나 쓰레기를 버리는 자는 곤장 80대를 친다" 라는 경고문이 적혀 있다.


#2. 고려궁터


▲ 고려는 고종19년(1232) 6월 몽고의 침략에 대항하기 위하여 고려무인 최우의 용기있는 주장에 따라 도읍을 송도에서 천혜의 요새인 강화도로 옮겼다. 이때 옮겨진 도읍터가 고령궁지로 원종 11년 (1270) 5월 개성으로 환도할 때까지 39년간 사용되었다.
고려궁지는 송도궁궐과 비슷하게 만들어졌고, 궁궐 뒷산 이름도 송악이라고 하여 왕도의 제도를 잊지 않으려 하였다고 한다.
1637년 병자호란시 강화성이 청나라 군에게 함락 되는 등 여러차례 전란을 겪으면서 궁궐과 성은 무너지고 말았다. 그 후 고려궁터에는 조선시대의 건물인 승평문, 강화유수부동헌, 이방청, 종각 등이 현재까지 남아있다.





▲ 강화유수부동헌
조선시대 관아의 건물로서 강화지방의 중심 업무를 보던 동헌으로 오늘날의 군청과 같다. 영조 45년(1769)에 유수 황경원이 현윤관이라 이름을 붙였으나 현재는 명위헌이란 현판이 걸려있으며, 글씨는 당시의 명필이며 학자인 백하 윤순이 썼다. 강화부는 조선인조 4년(1626)에 강화 유수부로 승격되었다. 건물은 겹처마에 단층 팔작지붕이며, 이중의 장대석 기단 위에 네모골의 주처석을 놓고 네모로 다듬은 기둥을 세웠다.



▲ 외규장각
1782년 2월 정조가 왕실 관련 서적을 보관할 목적으로 강화도에 설치한 도서관으로, 왕립도서관인 규장각의 부속 도서관 역할을 하였다. 설치 이후 왕실이나 국가 주요 행사의 내용을 정리한 의궤를 비롯해 총 1,000여권의 서적을 보관하였으나, 1866년 (고종3) 병인양요 때 프랑스군이 강화도를 습격하면서 297권의 왕실의 주요행사를 기록한 의궤서적을 약탈하고, 나머지는 불에 타 없어졌다.
대한민국 정부와 민간단체에서는 프랑스 정부에 계속해서 외규장각 도서의 환수를 요구해 왔으나 반환 협상이 연기되거나 프랑스 측에서 계속 협상을 지연시키는 등 소극적인 자세를 보이다 2010년 11월 12일 G20 정상회의에서 양국의 대통령 간에 외규장각 도서를 5년마다 계약을 갱신하는 임대형식으로 대여하기로 협의하였고, 2011년 6월 11일 145년 만에 우리나라로 돌아왔다.







#3. 강화지석묘


▲ 지석묘란 청동기시대 사람들이 만든 무덤으로 고인돌이라고도 하는데, 지상에 책상처럼 세운 탁자식(북방식)과 큰 돌을 조그만 받침돌로 고이거나 판석만을 놓은 바둑판식(남방식)이 있다.


(강화역사박물관이 모습)

▲ 강화군 하점면 부근에는 40여 기의 고인돌이 있는데, 이 중 부근리 고인돌이라 부르는 규모가 큰 탁자식 고인돌이 1964년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전체높이는 2.6m이며, 덮개돌은 길이 6.5m, 너비 5.2m, 두께 1.2m의 화강암으로 되어 있다.


▲ 이 고인돌에 대한 발굴조사는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으나 인근 삼거리에 있는 고인돌에서 무문토기조각과 간돌검(마제석검), 돌가락바퀴(방추차)를 비롯한 유물들이 나온 것으로 미루어 삼거리 유적과 비슷한 유물들이 들어 있을 것으로 짐작된다.




▲ 2000년 12월 고창, 화순 고인돌 유적과 함께 강화 고인돌 유적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