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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풍물시장 주변볼거리(1) 초지진, 덕진진, 광성보

by 엘븐킹 2012. 3. 23.
강화풍물시장 주변볼거리(1) 초지진, 덕진진, 광성보

#1. 초지진



▲ 초지대교 다리를 건너가면 제일 먼저 초지진을 만난다. 강화도의 해안에는 초지진과 같은 진이나  보, 돈대가 수십 군데 있는데, 초지진도 규모는 작지만 그중 하나로 관광객들이 많이 들르는 곳이며 근처에는 음식점들도 많다. 강화도 해안의 진지 중에서는 초지진 북쪽에 있는 덕진진이나 광성보의 규모가 가장 크고 바다를 바라보는 경치도 아주 좋다.



초지진은 해상으로부터 침입하는 적을 막기 위하여 조선 효종 7년(1656)에 구축한 요새이다.

안산의 초지량에 수군의 만호영이 있었던 것에서 처음 비롯되었는데 1666년에 초지량영을 이곳으로 옮긴 뒤 ‘진’으로 승격되었다. 1870년대에 미국과 일본이 침략하였을 때 이들과 맞서 싸운 곳으로 1871년에 미국 해병이 초지진에 침략해 왔을 때 전력의 열세로 패하여 점령당하였다. 이 때 군기고, 화약창고 등의 군사시설물이 모두 파괴되었다.

일본이 조선을 힘으로 개항시키기 위해서 파견했던 운양호의 침공은 고종 13년(1876)의 강압적인 강화도 수호조약으로 이어져 일본침략의 문호가 개방되었다. 그 뒤 허물어져 돈대의 터와 성의 기초만 남아 있었으나 1973년 초지돈을 복원하였다.

민족시련의 역사적 현장이었던 이곳은 호국정신의 교육장이 되도록 성곽을 보수하고 당시의 대포를 진열하였다.


- 출처 - 문화재청 홈페이지
http://www.cha.go.kr/korea/heritage/search/Culresult_Db_View.jsp?mc=NS_04_03_02&VdkVgwKey=13,02250000,23



#2. 덕진진



▲ 덕진진 - 해협의 관문을 지키는 강화도 제1의 포대



▲ 덕진진은 조선시대 강화해협을 지키는 요충지로서 효종 7년(1656) 국방력 강화를 위해 해군 주둔지 「수영」에 속해 있던 덕진진을 덕포로 옮겼으며, 숙종5년(1679)에 용두돈대와 덕진돈대를 거느리고 덕진포대아 남장포대를 관할함으로써 강화해협에서 가장 강력한 포대로 알려져 있었고 5진 7보 가운데 가장 중요한 곳을 지키고 있었다.

병인양요(1866) 때는 양헌수 장군의 부대가 덕진진을 통하여 정족산성에 들어가 프랑스 군대를 격파하였으며 1871년 신미양요때는 미국함대와 가장 치열한 포격전을 벌인 곳이다.

- 자료 출처는 강화군시설관리공단에서 제공하는 강화관광안내도 팜플렛...관광요금을 내고 관람시 요금소에서 작은 팜플렛을 준다.

<남장포대>






덕진진에 소속된 강화의 8개 포대중 하나로 낮은 위치에 포좌를 설치하여 강화해협을 지나는 선박을 공격할 수 있게 되어있다.
10문의 대포가 배치되어 강화진지중에서 가장 막강한 화력을 자랑하던 곳으로, 고종8년(1871) 신미양요때 미국 아세아 함대와 맹렬한 포격전을 전개하였던 곳이다.

<덕진돈대 >






▲ 덕진진에 소속된 2개의 돈대중하나로 광성보와 초지진 중간에 위치하여 강화수로의 가장 중요한 요새지이다. 신미양요(1871) 당시 미국함대와 48시간 동안 치열한 포격전을 전개했던 곳이다.


▲ 덕진진의 모습



▲ 덕진진의 모습



▲ 덕진진의 모습

#3. 광성보



▲ 광성보는 강화해협을 지키는 중요한 요새로, 고려가 몽골의 침략에 대항하기 위하여 강화로 천도한 후에 돌과 흙을 섞어 해협을 따라 길게 쌓은 성이다. 조선 광해군 때 헐어진 곳을 다시 고쳐 쌓았으며, 1658년에 강화유수 서원이 광성보를 설치하였다. 그 후 1679년에 완전한 석성으로 축조하였다. 1871년 신미양요 때 가장 치열했던 격전지로, 이 전투에서 조선군은 어재연 장군을 중심으로 용감히 항전하였으나 열세한 무기로 분전하다가 포로되기를 거부하여 몇 명의 중상자를 제외하고 전원이 순국하였다. 이때 파괴된 문루와 돈대를 1976년에 복원하였으며, 당시 전사한 무명용사들의 무덤과 어재연 장군의 전적비 등을 보수, 정비하였다.

<광성돈대>





▲ 광성돈대는 광성보에 딸린 원형의 돈대로, 돈 안에는 당시에 사용했던 대포, 소포, 블랑기가 복원되어 있고, 그 주변으로 성축을 쌓았다. 신미양요 때 파괴되었다가 1977년에 포좌 4개 소화 포 3문을 복원하였다.

<신미양요 순국무명용사비>



무명용사비는 신미양요(1871)때 미군이 10여 명의 사상자를 냈던 것에 비해 조선군 지휘관 어재연 장군과 군졸이 열세한 무기로 용감하게 싸우다 순국한 것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비이다.

<쌍충비각>


쌍충비각은 신미양요시 광성보 전투에서 순절한 어재연장군과 그의 아우 어재순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이다. 어재연, 어재순 이하 전 수비군을 열세한 병기로 미국 아세아 함대의 해병대와 치열한 격전을 벌려 전 수비군이 장렬히 순국한 곳에 나라에서 충절을 기리기 위하여 세운 비이다.

<손돌목돈대>






▲ 손돌목돈대는 일명 손석항돈대라고도 하며, 용두돈대에 못미쳐 구릉 정상부에 둥그렇게 쌓은 돈대이다. 강화 일대가 훤희 내려다보여 중요한 역할을 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강화풍물시장을 가면서 주변 볼거리로 초지진, 덕진진, 광성보를 소개해드렸습니다. 이외에도 강화도에는 갑곳돈대, 강화역사관, 강화읍성, 고려궁터, 광성보, 덕진진, 마니산, 보문사, 전등사, 정수사, 지석묘 등등 볼거리가 정말 많은데요.
강화나들길을 따라서 도보여행이나 자전거 여행을 해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특히 전등사, 석모도, 보문사,
어유정해변 등등 볼거리가 더 있지만, 시간이 부족하여 이번 강화풍물시장 여행에서는 가보지 못했네요.
다음에 기회가 닿으면 꼭 가보고 싶은 곳들입니다.



<용두돈대>

 






▲ 용두돈대는 강화해협을 따라 용머리처럼 돌출한 자연 암반위에 설치된 천연적인 교두보로, 1679년에 세워져 병인양요와 신미양요 때 치열한 포격전이 전개되었던 곳이다. 돈대 중앙에는 강화전적지정화기념비를 세웠는데, 앞면에는 고 박정희 전 대통령의 글씨, 뒷면에는 이은상 선생이 짓고, 김충현 선생이 글씨를 쓴 비문이 새겨져 있다.


▲ 용두돈대에서 바라 본 바다의 모습...물살이 꽤 쌔다는 것을 직접 눈으로 볼 수 있었습니다.
조수간만의 차가 정말 큰 것 같아요.